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문단 편집) == 일화 == [[이탈리아]]의 유명한 [[기자]] [[오리아나 팔라치]]와의 일화도 흥미롭다. 호메이니와 팔라치는 [[영어]]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팔라치는 호메이니의 면전에서 "현재 이란은 [[파시즘]] 정권이 아닌가?"라고 까자 호메이니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파시즘과 이슬람은 양립할 수 없소. 파시즘은 이슬람 문화권이 아니라 서구에서 생겨난 것이오."라고 반박했는데, 팔라치는 호메이니가 [[광신자]]처럼 날뛸 줄 기대했는데 그러지 않아 놀랐다고 한다. 이후 두 사람은 여성인권 문제, 정적 탄압 등에 대해서 계속 논쟁했는데, 이때마다 호메이니가 정중하면서도 교묘히 논점을 흐리는 대답으로 반박하자 그다지 논리적인 답변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팔라치는 미리 준비했던 인터뷰 시나리오에서 완전히 벗어나 호메이니에게 휘둘리게 되었다. 그런데 팔라치는 딱 한번 호메이니를 격분하게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바로 차도르 논쟁이었는데 호메이니는 차도르를 둘렀던 여자들은 혁명투사였지만 화장이나 하는 여자들은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샤]]에게 충성했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팔라치는 그것은 사실왜곡이며 혁명 이후 여자들은 차별받고 차도르는 이미 여성 차별의 상징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팔라치가 여자들이 대학에서 남자들과 공부하는 것도 금지당하고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금지당하고 수영복도 입을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건 그렇고, 차도르를 입고 어떻게 수영을 합니까? 이 대목에서 화가 난 호메이니는 성을 내면서 무례하게 대답했다. >그건 당신이 상관할 바 아닙니다. 우리 관습에 왜 당신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겁니까? 이슬람의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옷을 입지 않아도 됩니다. 이슬람의 옷은 훌륭하고 품위있는 젊은 여성들을 위한 것이니까요. 빡친 팔라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말 친절하시군요, 이맘.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 시시하고 고리타분한 걸레조각을 지금 당장 벗어버리겠습니다. 그리고 차도르를 벗어 찢어버린 다음에 호메이니의 발치에 던져버렸다. 격노한 호메이니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고 팔라치는 호메이니의 등 뒤에 '''오줌 싸러 가시느냐'''고 빈정댔다. 통역을 맡고 있던 이란 대통령 아볼하산 바니사드르와 호메이니의 아들이 팔라치에게 이제 나가주셔야겠다고 애원했지만 팔라치는 호메이니가 다음날 인터뷰를 할 것을 [[쿠란]]에 대고 맹세하기 전에는 못 물러난다고 버텼고 호메이니가 정말로 쿠란에 대고 맹세한 후에야 자리에서 물러났다. 두 번째 인터뷰 전에 호메이니의 아들 아흐마드가 그에게 귀띔해 주었다. 아버지가 아직도 차도르 건으로 화가 나 있으니 차도르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충고에 아랑곳없이 인터뷰 시작하자마자 차도르 얘기부터 다시 시작했다. 난리가 나나 싶었는데 호메이니는 씨익 웃더니 껄껄 웃어버렸다고 한다. 그에게 제발 두 번째 인터뷰는 [[산통]]깨지 말라며 신신당부하던 아들 아흐메드조차도 '''아버지를 웃게 만든 건 기자가 처음이오'''라고 말했다. [[http://neo-neocon.blogspot.com/2006/09/fallaci-goes-few-rounds-with-khomeini.html|#]] 물론 팔라치와 호메이니가 서로를 이해하거나 생각을 바꾼 것은 아니었지만, 호메이니는 막장 신정 통치와는 별개로 의외로 인간적인 면 내지는 소탈한 면도 있었다. 사실 정치적으로 악행을 많이 저지른 독재자나 악인들이 개인적으로 일정부분 소탈하거나 인정이 많은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지 않다. [[아돌프 히틀러]]와 [[하페즈 알 아사드]], [[사담 후세인]], [[폴포트]] 같은 악랄한 독재자들도 개인적으로는 친절하고 소박한 이미지였다. [[1988년]]에 [[인도]] 출신의 [[영국]] 작가인 살만 루시디가《[[악마의 시]]》를 출간하였을 때, 호메이니는 "악마의 시"가 이슬람을 모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작가를 포함해 악마의 시의 번역, 출판에 관여한 모든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무슬림]]들이 따라야 할 종교적 해석 겸 칙령인 '''파트와'''를 내렸다. 이후 일본에서는 [[악마의 시 번역자 피살사건|악마의 시를 번역한 사람이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참고로 여기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자 우스운 사실이 하나 있는데, 호메이니는《[[악마의 시]]》를 보자마자 노발대발해서 사형선고 파트와를 내린 것이 아니다. 호메이니가 처음 악마의 시를 접했을 때는 "세상에는 별의별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식으로 별것 아니라는 것처럼 넘겨버렸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 대한 반감여론이 서서히 일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보자는 생각이 들자''' 루시디를 죽이라는 파트와를 낸 것이다(!) 그의 [[마키아벨리즘]]적 정치스타일을 잘 볼수 있는 사례다.[* 출처 :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 유달승 저.] 10년 후인 1998년, [[이란]] 정부는 이제 괜찮다는 듯한 요지의 외교적 발언을 했으나 파트와를 선언한 호메이니는 9년 전인 [[1989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파트와를 선언한 사람만 파트와를 철회할 수 있다는 규정에 의해 '''루시디에게 내려진 사형 판결은 그가 죽기 전까지는 유효하다.''' 물론 이란 정부도 이거 철회하고 싶은데 규정상 어쩔 수 없다고. 대신 살만 루시디 살해에 대해서 일체의 협조도, 살해자에 대한 일체의 보호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만 밝힌 상태이다. [[축구]]를 엄청나게 싫어했다고 한다. 호메이니는 축구를 이슬람의 미풍양속을 해치는 악의 산물로 봤고, 정권을 잡자마자 먼저 시도한 것 중 하나가 이란에서 축구를 영원히 못 하게 만드는 축구 금지령이었다.[* 다만 축구가 그냥 스포츠가 아니라 나름 서구 자본에 의해 상업화된 지 오래이긴 했는데 호메이니는 반서방주의자들 중에서도 꽤 끝자락에 있는 인물이었으니 당연한 처사이기는 했다.] 그러나 호메이니의 많은 부하들에서부터 지지층과 이슬람 성직자, 이슬람 혁명을 주도한 혁명 주요 인사들까지 축구광이라서 반대가 심했고, 국민들의 반응도 축구에 미친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만약 축구를 탄압하면, 우리는 당신들을 몰아내고 다시 [[팔라비 2세]]를 데려올 거다'''는 반응이 압도적이라(...) 결국 축구 탄압은 유야무야 되어버렸다. 하지만, 호메이니는 끝까지 축구 지원에는 인색했다. 그리고 호메이니가 물러난 이후부터 정재계가 모두 나서서 국가 단위로 축구를 전폭적으로 지원하였고 이권의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고 한다. 대신, 팔라비 왕조 시절 실업리그로 이뤄지던 [[야구]]나 [[농구]]나 [[배구]]같은 종목은 미국이 고향이니 금기시되면서 이란은 이들 종목은 아주 박살났다. 하지만 이 종목들도 호메이니 본인의 뜻일 뿐이다 보니 죽자마자 당연히 육성이 이뤄졌고, 2000년대 와서는 배구와 농구는 아시아 최강급이 되었다. 이런 축구 및 스포츠 혐오 정서는 이슬람 극단주의권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 이란의 이웃나라인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을 비롯해, [[이슬람 극단주의]] [[군벌]] 지도자인 [[굴부딘 헤크마티아르]]도 호메이니처럼 축구라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혐오해서 집권 이후 축구장이란 축구장은 죄다 '''총살 처형장'''으로 만들어서 거기서 반대파와 여성들을 공개처형으로 학살했다. 그리고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자인 [[ISIL]] 지도자 [[알 바그다디]] 역시 한때 축구 매니아였으나 본격적으로 이슬람 광신 근본주의자가 되고 나서는 축구를 하면 극형에 처하는 법률을 만들 정도로 축구를 혐오한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일부 [[와하브파]] 광신도 율법학자들도 축구를 금지하든지 아니면 축구 방식과 제도를 완전히 [[마개조]]해 '''이슬람식 공차기놀이''' 정도로 바꿔야 한다는 무리수적인 설교를 해 논란이 일곤 한다. 사실, 축구가 유럽에서 온 비이슬람 종목이라고 극단주의자들이 반대하는 것도 있고 당연히 모든 스포츠에 대해 금지하고 혐오하는 것도 있다. 탈레반은 [[연날리기]]조차 금지할 정도였다. 하지만 우스운 것은, 탈레반의 경우 똑같이 서구권에서 유래된 [[권투]]를 즐기고 금지하지 않고 있다. 예외 사항이 제멋대로임을 보여주는 사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